"여기는 왜 이렇게 꼼꼼하게 물어보세요?"
진료를 받아보신 분들께 가끔 듣는 이야기입니다.
저희는 시술이 끝나면 꼭 기록을 남기고, 다음 내원 때 "지난번 시술 후에 어떠셨어요?" 를 꼭 여쭤봅니다.
효과는 어땠는지,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안녕하세요? 에피소드의원 대표원장 서민호입니다.
이번 글은 시술 이야기라기보다는 제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오늘은 제가 왜 이렇게 시술 기록에 집착하는지, 그 이유를 한번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차팅에 진심인 에피소드입니다
1. 피부미용 시술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습니다
피부미용 장비의 가이드라인을 보면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파라미터가 딱 하나의 숫자로 주어지는 경우보다 범위로 주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5에서 7, 0.8에서 1.2J, 10에서 20ms.
이런 식입니다.
왜 그럴까요?
환자마다 피부 상태가 다르고, 같은 에너지에도 반응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이드라인은 범위로 주어집니다
범위의 아래쪽으로 가면 효과가 부족할 수 있고,
범위의 위쪽으로 가면 효과는 커지지만 부작용 위험도 함께 올라갑니다.
결국 좋은 시술이란
효과는 충분히 확보하면서, 부작용 위험은 최소화하는 그 사람만의 적정 범위를 찾아가는 과정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범위 안에서 어떤 숫자를 고를지는 가이드라인이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 답은 환자의 지난 기록 안에 있습니다.
2. 다음 시술에는 지난 반응이 필요합니다
많은 미용의료 시술은 조직에 일정한 자극을 주고, 그 뒤에 일어나는 회복 반응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이번 시술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려면
지난 시술의 조건과, 그 이후의 회복 경과를 함께 봐야 합니다.
제가 기록에서 꼭 보는 건 딱 세 가지입니다.
Parameter → Response → Next Treatment
이전 세팅 - 어떤 조건으로 시술했는가
시술 후 반응 - 어떤 변화와 불편이 있었는가
다음 계획 -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
이 세 가지가 이어져 있어야 다음 시술이
"지난번이랑 똑같이"가 아니라 "지난번보다 조금 더 나에게 맞게" 가 될 수 있습니다.
3. 기록이 없으면 보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지난 기록을 확인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의사 입장에서는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번에 어떤 설정값으로 시술을 했는지 모르는데, 처음 보는 것처럼 무작정 강하게 진행할 수는 없으니까요.
환자분 입장에서는 여러번 받는 시술인데도 매번 1회차처럼 받게 되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기록을 꼼꼼하게 읽으려면 또 시간이 듭니다.
날짜마다 흩어진 시술 내용과 메모를 하나씩 넘겨가며 흐름을 파악해야 하고,
그만큼 환자를 보는 시간이 아니라 차트를 읽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기록은 남기는 것만큼이나, 바로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시작은 작은 제모 카드 한 장이었습니다
제가 이 문제를 처음 체감한 건 제모였습니다.
제모는 여러 번 반복해서 받는 시술이고, 회차가 쌓일수록 파라미터도 함께 조절해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환자분들께 작은 제모 카드를 만들어서 나눠드렸습니다.
처음 만들었던 제모 고객카드 (예시)
스팟 크기, 펄스폭과 에너지, 마취, 시술 의사까지 손으로 적었습니다.
지난번에 어떻게 했고, 다음번에는 어떻게 할지.
처음에는 꽤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환자분들이 많아지니까 종이카드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카드를 잃어버리시기도 하고,
이전 기록을 바로 찾기도 어렵고,
의사와 직원이 같은 정보를 공유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종이는 기록은 되지만, 검색되지도, 공유되지도, 비교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차트 안에서 제모 부분만 따로 분리해서,
시술 파라미터와 결과를 구조화해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모 전용 차트 - 회차별 직경, 펄스폭, 강도와 직전 시술의 효과/불편 (개인정보 비식별 처리)
같은 환자의 회차별 기록을 나란히 놓고 보면
직경, 펄스폭, 강도가 회차에 따라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리고 다음 내원 때 확인한 직전 시술의 효과와 불편이 어땠는지가 한눈에 보입니다.
그렇게 쌓인 제모 기록이 지금은 28,000건을 넘었습니다.
(이 데이터를 분석한 내용은 지난 글 「젠틀맥스프로플러스 제모레이저 시술 리포트」 에 정리해두었습니다.)
5. 시술마다 필요한 기록은 다릅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모에서 이전 파라미터와 결과를 구조화해서 관리하는 게 의미가 있다면,
다른 시술에서도 똑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모든 시술을 같은 양식으로 적을 수는 없었습니다.
시술마다 봐야 하는 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모 - 부위, 파라미터, 반응, 다음 세팅
리프팅 - 장비, 샷수, 층, 부위별 세팅
필러, 스킨부스터 - 제품, 용량, 주입 부위, 경과
색소, 보톡스, 흉터 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모든 시술을 같은 방식으로 적게 하는 대신,
시술별로 남겨야 하는 데이터 자체를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레이저 토닝 회차별 파라미터와 시술 내용 기록 (개인정보 비식별 처리)
이렇게 모아서 보면 회차마다 어떤 조건으로 시술했고, 그때 피부가 어떻게 반응했는지가 흐름으로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차트를 직접 만드는 데까지 오게 됐습니다.
기록을 남기기 쉽고, 다음 진료 때 필요한 기록만 짧은 시간에 확인할 수 있도록 최적화를 했습니다.
6. 사진도 기록입니다
진료 기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사진입니다.
저희는 사진을 두 가지 방식으로 남깁니다.
정규촬영 - 촬영실에서 정확한 각도로 촬영합니다. 리프팅, 볼륨 변화처럼 전체적인 변화를 볼 때 씁니다.
간이촬영 - 국소 부위를 회차마다 촬영합니다. 색소, 제모 효과, 모공처럼 부분적인 변화를 볼 때 씁니다.
그런데 사진 한 장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생각보다 할 일이 많습니다.
세안하고, 촬영실로 이동하고, 촬영하고, 차트에 등록하고, 다시 차트를 열어서 확인하고,
그제서야 상담에 쓸 수 있습니다.
매 회차 반복하기엔 과정이 너무 깁니다.
그래서 자주 찍어야 하는 간이촬영부터 간소화했습니다.
시술 자리에서 패드로 바로 촬영하고, 촬영 직후 이전 회차 사진과 바로 비교합니다.
회차별 사진 비교 화면 (가상 환자 예시)
"좋아지고 있어요" 라는 말보다,
지난 회차 사진과 나란히 놓고 보는 게 훨씬 정확합니다.
7. 마치며..
정리하면 제가 기록에 집착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같은 장비, 같은 시술이라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번에 어떤 파라미터를 썼고,
그 뒤에 어떻게 반응했고,
그래서 이번에는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바꿀지.
이게 이어져 있어야
매번 1회차처럼 조심스럽게만 하는 시술도,
반대로 반응을 모른 채 무리하게 올리는 시술도 피할 수 있습니다.
차트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다음 치료에 더 좋은 효과를 내기위한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다음 내원 때 "지난번 시술 후에 어떠셨어요?" 라고 계속 여쭤보겠습니다.
그 대답 하나하나가 다음 시술을 더 나에게 맞게 만드는 중요한 정보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서민호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