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CLI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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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모]

의사들을 위한 제모 가이드 2편

펄스폭과 플루언스, 무엇이 무엇을 움직이는가?

수석원장 김승환에피소드의원조회 178좋아요 2

안녕하세요! 에피소드 의원 수석원장 김승환입니다.


이제 2편입니다! 1편의 결론은 타겟은 하나가 아니다였습니다. 레이저 에너지를 흡수하는 자리(melanin)와 실제로 손상되어야 할 자리(bulge, dermal papilla 등)가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어서, 열이 퍼져야 타겟에 닿는다는 게 핵심이었죠.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어디까지, 얼마나 오래 열을 보낼 것인가”가 중요해지고, 이건 곧 파라미터가 결정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2편에서는 이걸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하는데요. 굳이 말하자면 미용 시장에서 다른 고급 시술들에 비해 저가 시술인 제모에 왜 이렇게 집착하냐면 이게 다 셀프제모 효율화를 위해서다..


1편이 이론적인 지식 전달에 가까웠다면, 2편은 제가 매일 제모 시술을 하며 쓰는 파라미터 조정 루틴을 검토해보기 위해 탐구했던 과정과, 왜 원장님들마다 의견의 차이가 있을지를 분석하는 과정을 소개하는 글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잠시 자랑하자면 파라미터를 체계적으로 조정하고 기록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의원에 근무하다 보니, 피시술자분들이 회차마다 체감 만족도까지 기입한 데이터가 몇 만 건 넘게 쌓였습니다. 이걸 토대로 병원 매뉴얼을 정리하려다보니, 보다 정확한 근거 기반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싶었는데 관련 연구가 생각보다 부족하다는 게 큰 장벽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흔히 쓰는 상식과 저의 루틴 등이 근거로 뒷받침되는지, 혹시 뒤집힐 부분은 없는지 더 파고들어 보았습니다.


1편과 마찬가지로 audience를 원장님들(특히 755nm 제모 기계를 사용하시는 원장님들)로 생각하고 조금 깊게 들어가보겠습니다. 먼저 얘기하자면 제모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아주 많을 텐데, 펄스폭/플루언스/파장/스팟 직경/중첩 정도/패스 횟수 등등.. 심지어 글 말미에 후술할 현실적인 변수들까지 있습니다.. 이들이 서로 독립적이지도 않아서 하나씩 떼어 분석하기는 어렵고, 다 통제하더라도 다른 장애물들이 많습니다. 애초에 경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에는, 감모량/굵기 감소량/부작용 정도와 빈도처럼 봐야 할 지표가 여럿이라 참 복잡합니다.. 다만 그래도 해당 글에서는 우리가 가장 자주 만지는 두 값, 펄스폭과 플루언스라는 조작변인에 대해 집중해보았습니다.



서론

image.png레이저 펄스의 모식도(직사각형 펄스 가정). 자체 제작.


스토리텔링 잠시 섞자면.. 제모 시술을 매일 하다 보면.. 몇 가지 상황들을 마주하고는 합니다. 직접 겪은 상황을 예를 들자면..


사례1. 직전 회차에 5ms 13J/cm²로 시술받고 아쉬워한 분께 10ms 15J/cm²로 쐈더니 만족하셨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해봅니다. 더 오래 데워야 반응하는 털이었을까? 더 높은 플루언스 자체가 결정타였을까?


사례2. 10ms 11J/cm²로 시작해서, 회차가 진행됨에 따라 15J/cm²까지 올렸던 분께 다음 회차에 3ms 12J/cm²로 쐈더니, 이전에 비해 반응이 영 아쉽다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해봅니다. 남은 털들에 필요했던 “스윗 스팟(?)”이 10ms 근처였을까? 아니면 “스윗 스팟”이 훨씬 긴 쪽에 있어서 10ms가 3ms보다 거기에 조금 더 가까울 뿐이었을까? 애초에 펄스폭의 “스윗 스팟”이 있을까?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정확한 이론적인 배경을 토대로 해당 분야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제모 레이저를 처음 배울 때 흔히 듣는 말이 있습니다. 펄스폭에 대해 “가는 털은 짧게, 굵은 털은 길게.” 그리고 어느 기기 매뉴얼에나 등장하는 말도 있습니다. “더 높은 플루언스를 쓸 때에는 펄스폭을 늘리는 것을 고려하라.” 저희가 쓰는 젠맥프플(다 아시니 줄여 쓰겠습니다..ㅎㅎ) 매뉴얼에도 “짧은 펄스폭 = 가는 모발, 긴 펄스폭 = 굵은 모발”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제조사 마케팅도 같은 방향인데, Candela 공식 제품 페이지를 보면 젠맥프플의 강점으로 자사 라인업 중 가장 짧은 2ms 펄스폭 설정이 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우면서, 이를 “for optimal treatment of fine hair”라고 설명합니다. 이쯤 되면 의심할 필요 없는 진리 같습니다. (후술하겠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래서 따져보고 싶었던 건,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맞는지, 맞다면 어떤 이유로 맞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가 의미 있는지 등입니다.



논문은 뭐라고 할까..

명쾌한 결론이 있을까 싶어 관련 논문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755nm에서 플루언스를 고정하고 펄스폭만 바꿔 비교한 연구가 많지 않습니다. 제가 찾은 바로는, 우리가 주로 쓰는 2~10ms 범위에서 펄스폭만 바꿔 비교한 동료심사 논문은 2000년 이후로 한 편(Noormohammadpour et al., 2021)뿐이었습니다. Nd:YAG(1064nm)나 다이오드(800~810nm)에서는 조금 더 있지만, 당장 우리에게 중요한 건 755nm죠. 1999년 논문들까지 포함해서 소개해보겠습니다.


의사들을 위한 제모 가이드 2편 - 펄스폭과 플루언스, 무엇이 무엇을 움직이는가? 이미지 2Nanni et al. 논문 서지정보. 출처: PubMed, PMID 10406473. https://pubmed.ncbi.nlm.nih.gov/10406473/ (2026년 9월 25일 확인)


Nanni et al. (1999) - 36명, 5/10/20ms 비교(평균 18J/cm², 10mm 스팟). 세 펄스폭 사이에 효능과 부작용 모두 유의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20ms에서 시술 후 홍반과 색소침착이 적은 경향이 관찰되었습니다.



의사들을 위한 제모 가이드 2편 - 펄스폭과 플루언스, 무엇이 무엇을 움직이는가? 이미지 3McDaniel et al. 논문 서지정보. 출처: PubMed, PMID 10469087. https://pubmed.ncbi.nlm.nih.gov/10469087/ (2026년 9월 25일 확인)


McDaniel et al. (1999) - 22명의 31개 부위, 5/10/20ms 비교(20J/cm² 고정, 10mm 스팟). 10ms 단일 펄스에서 가장 큰 감모를 보고했습니다. 다만 부위가 윗입술 17, 다리 9, 등 2, 비키니 3으로 섞여 있고 Fitzpatrick I~III만 포함했습니다.



의사들을 위한 제모 가이드 2편 - 펄스폭과 플루언스, 무엇이 무엇을 움직이는가? 이미지 4Noormohammadpour et al. 논문 서지정보. 출처: PubMed, PMID 34733744. https://pubmed.ncbi.nlm.nih.gov/34733744/ (2026년 9월 25일 확인)


Noormohammadpour et al. (2021) - 안면 다모증 여성 50명, 3/10ms 반안면 비교. 1개월 시점 감모율은 56% vs 56%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참고로 이 논문은 꼭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제가 쓰는 글의 목적과 연구 배경이 거의 일치해요.. “..but as far as we know, there are not too many studies for the examination of the outcome fo treatment using different pulse durations, although this parameter has been shown to be important.”)


많지는 않지만 귀중한 세 편을 정리하면, 두 편은 차이가 없었고, 한 편은 10ms가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이 논문들은 “펄스폭은 의미가 없다”의 증거로 읽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설계에서 걸리는 점이 몇 가지 있기 때문입니다. 털 굵기를 측정하거나 굵기별로 나눠 분석한 연구가 없고, 표본이 22~50명입니다. (이 크기면 “차이 없음”은 “같다”라기보다 “이 인원으로는 가르지 못했다”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부위가 섞여 있거나, 추적 기간이 짧습니다..


더 제대로 된 연구가 왜 그동안 거의 없었는지 추측해볼 수는 있었는데, 물론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당시 기기로는 펄스폭만 떼어 바꾸기가 기술적으로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기기의 최대 출력이 정해져 있으면 짧은 펄스에서 낼 수 있는 최대 플루언스가 낮아집니다. 지금이야 기기가 좋아서 제모기기의 최대 출력이 넉넉해졌지만, 당시 기기들은 지금보다 출력이 낮았으니 위험해서 안 쏜 게 아니라 정말로 세게 쏘는 게 불가능해서 못 쏜 걸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한마디로 플루언스를 통제변인으로 고정해봤자 조작변인 펄스폭의 선택지가 좁다는..


또 연구의 초점이 옮겨간 게 체감됩니다. 검색 결과 대부분이 기기 vs 기기 비교, 혹은 저플루언스 고반복 전략과의 비교였습니다. 한 기기 안에서 펄스폭을 비교하는 연구는 새 기기를 파는 데 딱히 도움이 안 되니까요.. (다른 기계가 구현하지 못하는 펄스폭을 가능케 한 신제품 홍보 차원이 아니라면ㅎㅎ)


여기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이는 게 유럽레이저피부과학회(ESLD)의 2005년 제모 가이드라인입니다.


의사들을 위한 제모 가이드 2편 - 펄스폭과 플루언스, 무엇이 무엇을 움직이는가? 이미지 5ESLD 제모 가이드라인 중 펄스폭 항목. 출처: Drosner M, Adatto M. J Cosmet Laser Ther. 2005;7(1):33-38 (PMID 16020215)


이 가이드라인의 펄스폭 항목은 첫 문장부터 “10/20/30/40ms 사이에 효능 차이가 없다”로 시작합니다. 흥미로운 건 같은 문단의 결론인데, 짧은 펄스일수록 색소가 있는 표피를 데울 위험이 크니 10~40ms 안에서 피부와 털의 색소 정도에 맞춰 펄스폭을 고르라고 하면서, “털의 색소가 적고 가늘수록 펄스폭은 짧아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효능 차이는 없다고 하면서도, 펄스폭을 표피 안전과 털의 굵기/색에 맞춰 조정하는 변수로 정리한 셈이죠. (물론 우리가 궁금한 2~10ms보다 긴 범위의 이야기이고, 이 권고에 따로 인용된 임상 연구는 없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펄스폭의 ‘효능’ 논쟁은 끝난 문제로 취급될 만했던 거죠..


그래서 논문만 보고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논문도 가이드라인도 효능 차이는 없다고 했는데, 가이드라인조차 “가는 털은 짧게”라고 여전히 권하고 있고, 그 상식은 아직도 구전(?)되고 있으니까요.. 그 근거가 데이터가 아니라 이론이라면, 이론을 직접 따져보는 수밖에 없겠다 싶었습니다. 펄스폭이 정말 의미가 없는 걸까? 아니면 의미는 있는데 이 설계들로는 안 보이는 걸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논문 밖의 도구가 필요했습니다.



실제로 하는 조작을 숫자로 옮겨보면..

거창한 건 아니고, 직접 계산을 해봤습니다. 먼저 제 개인적인 루틴(정석적인 추천값이 전혀 아님. 반박 시 당신이 맞습니다..)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의 권장값도 아니고, 제가 매일 시술하면서 경험적으로 굳어진 루틴입니다..


보통 5ms 10J/cm² 혹은 10ms 11~12J/cm² 정도로 시작하는데, 회차가 진행되면서 플루언스를 유지하거나 소폭 올립니다. 펄스폭마다 심리적인 상한선은 존재하고요. (예를 들어 3ms에서 13J/cm² 이상은 웬만하면 안 쓴다든지..) 경과가 좋아서 가는 털만 남았다면 펄스폭을 3ms 혹은 2ms로 줄여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굵은 털이 아직 많이 남아있을 때에는 평소보다 긴 펄스폭과 보다 높은 플루언스를 고려하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이전 몇 회차 동안 어떻게 쐈는지 흐름을 보고, 육안으로 피시술자의 얼굴을 보고 경과 관찰까지 해서 복합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지 딱 떨어지게 글로 적기는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단계적으로 에너지를 올리거나 펄스폭을 변경하는 식으로 파라미터를 조정하는 루틴이 굳어진 뒤로, 피시술자분들의 체감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나아졌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게 이론적으로도 합리적인 선택이었을지 수학적으로 계산해보았습니다.


(첨언하자면, 플루언스를 그대로 두고 펄스폭만 늘리면 순간 세기 면에서 손해라는 직감 때문에 보통 펄스폭을 늘릴 때 플루언스를 같이 올리곤 하는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고민하는 감각을 숫자로 담아보려고 “평균 출력밀도(irradiance)”도 같이 넣었습니다. 플루언스를 펄스폭으로 나눈 값인데, 실제 레이저 펄스는 직사각형이 아닐 것이기에 순간 최댓값은 이보다 높을 수도 있겠지만, 계산이 복잡할 것 같아 평균 출력밀도로 했습니다..)


의사들을 위한 제모 가이드 2편 - 펄스폭과 플루언스, 무엇이 무엇을 움직이는가? 이미지 6


다시 말하지만 정말 주관적인 기준(그렇지만 제모 시술 몇 천 건을 넘게 하면서 터득한..)이기에 왜 이렇게 진행했는지는 그냥 개인적인 의견으로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특히 공유하고 싶었던 건 예시 2번 같은 상황인데, 미용 경력이 얼마 안 됐을 무렵에는 평균 출력밀도를 중요하게 생각했었는데(정확히 그걸 계산하고 다녔다기보다는, 펄스폭을 늘리면 순간 세기가 낮아지는 걸 경계했었던..), 평균 출력밀도가 거의 반토막이 나는 상황에서도 피시술자의 체감 만족도는 대부분 더 좋았습니다.. 이후로는 플루언스 자체, 혹은 펄스폭 자체가 중요한 건가 싶었고, 감이 잘 안 잡혀서 다시 이론으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이론으로 돌아가서..

1편에서 정리한 흐름을 다시 떠올려 보면, melanin의 laser absorption → heat generation → thermal diffusion → 주변 follicular structure의 손상이었습니다. 여기서 펄스폭이 개입하는 단계가 두 군데 있습니다. 첫째, 발색단(모간)이 충분히 뜨거워지는가. 쏘는 동안 열이 새어 나가면 덜 뜨거워지니, 이 단계만 보면 펄스는 짧을수록 유리합니다. 이때 기준이 되는 시간이 TRT(thermal relaxation time)입니다. 둘째, 그 열이 타겟까지 퍼질 시간이 충분한가. 열이 퍼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니, 이 단계만 보면 펄스는 길수록 유리합니다. 이때 기준이 되는 시간이 TDT(thermal damage time)입니다.


즉 두 단계가 펄스폭에 대해 서로 반대 방향을 원하는 셈이라, 한 가지 기준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1편에서 소개한 확장 이론의 결론 (”펄스폭은 target TRT보다 유의하게 길어야 한다”)도 같은 맥락입니다. 발색단과 타겟이 떨어져 있으니 두 번째 단계를 무시할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두 관점으로 나눠서 보고, 마지막에 겹쳐보겠습니다.


관점 1) TRT - 모간이 얼마나 뜨거워지는가


펄스폭이 발색단의 TRT보다 짧으면, 쏘는 동안 열이 거의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이를 단열 영역이라고 하겠습니다. 어차피 발색단의 TRT가 더 길기에, 최고 온도는 넣은 에너지의 총량(플루언스)으로 정해질 것입니다.


반대로 펄스폭이 TRT보다 길면, 쏘는 동안 열이 벌써 새어 나갑니다. 이를 누출 영역이라 하겠습니다. 같은 플루언스라도 길게 늘여서 쏘면 덜 뜨거워지기 때문에, 이때는 펄스폭과 플루언스가 함께 의미를 갖습니다.


그럼 우리가 실제로 쓰는 펄스폭 옆에 모간 TRT를 두어보겠습니다. (출처는 1편에서도 인용한, 밑에 첨부한 Altshuler et al.의 논문입니다.)


의사들을 위한 제모 가이드 2편 - 펄스폭과 플루언스, 무엇이 무엇을 움직이는가? 이미지 7Altshuler et al. 논문의 Table 2. Altshuler et al. Lasers Surg Med. 2001;29(5):416-432 (PMID 11891730)


의사들을 위한 제모 가이드 2편 - 펄스폭과 플루언스, 무엇이 무엇을 움직이는가? 이미지 8


의사들을 위한 제모 가이드 2편 - 펄스폭과 플루언스, 무엇이 무엇을 움직이는가? 이미지 9펄스폭과 모간 TRT의 시간 비교 모식도. 자체 제작.


굵은 털은 우리가 쓰는 범위에서 대부분 단열 쪽이고, 가는 털은 어떤 펄스폭에서도 누출 쪽입니다. 여기서 정리해보겠습니다.


굵은 털: 모간의 최고 온도는 주로 플루언스가 정한다. 3ms에서 10ms로 늘려도 모간이 달궈지는 효율을 크게 잃지 않는다. 굵은 털에서 “펄스폭을 늘리면 순간 세기에서 손해”라고 걱정할 이유가 물리적으로 크지 않은 셈..


가는 털: 짧게 쏠수록 덜 새어 나가므로 펄스폭을 줄이는 방향은 맞다. 다만 2ms도 가는 털의 모간 TRT보다 3배 이상 길다.. (가는 털에서 제모 효과가 아쉬운 근본 원인은 펄스폭이라기보다는 열원 자체가 작아 너무 빨리 식는다는 데 있다..)


이 규칙은 모간에만 해당하는 게 아닙니다. 표피의 melanin층도 TRT를 가지는데, 문헌에서는 표피 melanin층 전체 (약 50µm)를 기준으로 3~10ms 정도가 흔히 인용되고, melanin이 몰려 있는 기저층만 보면 2ms 안팎까지 짧아집니다. 어느 쪽을 택하든, 2~3ms 펄스는 쏘는 동안 표피가 식을 틈이 적은 쪽이고, 10ms로 갈수록 열을 내보낼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니 3ms에서 플루언스 상한을 5ms나 10ms보다 낮게 잡는 감각은 맞았던 건데, 이유가 “순간 세기가 올라가서”는 아니었던 거죠..


관점 2) TDT - 열이 타겟까지 퍼질 시간이 충분한가


1편에서 말씀드렸듯 모간을 달구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고, 그 열이 주변의 비색소성 구조까지 퍼져야 합니다. Table 2에는 이 시간(TDT)이 두 가지 타겟에 대해 계산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모간 성장을 멈추는 것(halting hair shaft growth)을 목표로 한 dermal papilla 혈관, 다른 하나는 모낭의 영구적 파괴(permanent hair-follicle destruction)를 목표로 한 stem cell입니다. 직사각형 광 펄스 기준으로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의사들을 위한 제모 가이드 2편 - 펄스폭과 플루언스, 무엇이 무엇을 움직이는가? 이미지 10


두 열을 우리가 쓰는 2~10ms 옆에 두면 성격이 다릅니다. Dermal papilla 혈관의 TDT는 우리 펄스폭 범위와 겹치거나 가까워서, 털 굵기에 따라 우리가 고르는 펄스폭이 그보다 짧은지 긴지가 달라집니다. 반면 stem cell의 TDT는 어떤 털이든 2~10ms보다 수십~수백 배 깁니다. 2ms를 쓰든 10ms를 쓰든 늘 ‘TDT보다 한참 짧은’ 같은 쪽에 있으니, 이 모델만으로 우리 범위 안에서 펄스폭을 바꿀 때 stem cell 쪽에서 무엇이 달라지는지 가려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dermal papilla 혈관의 TDT를 비교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어쨌든 그래서 Dermal papilla 혈관의 TDT를 보면, 털이 굵을수록 길어집니다. “가는 털은 짧게, 굵은 털은 길게”라는 상식이 적어도 이 모델의 계산과는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셈입니다..


두 관점을 합쳐보면..


털마다 관점1의 기준과 관점2의 기준을 나란히 놓아보겠습니다.


가는 털: 모간 TRT 0.6ms, dermal papilla 혈관 TDT는 1.5ms. 두 기준 모두 우리가 쓸 수 있는 가장 짧은 펄스폭(2ms)보다도 짧습니다. 두 관점이 같은 방향, 즉 짧은 쪽을 가리킵니다.


굵은 털: 모간 TRT 9.6ms, dermal papilla 혈관 TDT 21ms. 펄스폭을 10ms 정도까지는 늘려도 관점1에서 잃는 게 적고, 관점2는 오히려 더 긴 펄스를 원합니다. 그러니 펄스폭을 늘리는 건 잃는 건 적고 얻는 건 있는 조작이 됩니다.


중간 털: 모간 TRT 3ms, dermal papilla 혈관 TDT 8.5ms. 관점1은 3ms 이하를, 관점2는 8.5ms 근처를 원하니, 판단이 가장 애매한 구간입니다.. (원장님들마다 5ms파 vs 10ms파로 갈리는 게 이 구간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ㅎㅎ…)



그래서 이론으로 뽑아볼 수 있는 결론은..

상한은 플루언스로 생각하고, 펄스폭은 그 상한을 올려주는 변수로 보자.


짧은 펄스에서 상한을 낮게 잡는 감각은 맞지만, 기준은 평균 출력밀도가 아니라 플루언스다. 펄스폭을 늘리면 표피 쪽 여유가 생겨 더 높은 플루언스를 쓸 수 있다.


가는 털에 펄스폭을 줄이는 건 이론적으로 방향이 맞다. 다만 기대 폭은 크지 않을 수 있다.


TRT로 봐도 TDT로 봐도 짧은 쪽이 맞다. 하지만 임상 근거는 약하다.. 2ms가 3ms보다 낫다는 자료는 제조사 후원 콘텐츠로 게재된 것이 있는 정도.. 그리고 가는 털은 열원이 작다는 근본적인 불리함을 펄스폭만으로 극복하기는 어렵다.


굵은 털에서는 플루언스가 도달 온도를 정하고, 펄스폭을 늘리는 건 “잃는 게 적은 조작”이다.


단열 영역이라 모간이 달궈지는 효율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표피 여유와, 열이 dermal papilla 등으로 퍼질 시간을 함께 얻는다. (아까 예시 2번(5ms 15J/cm² → 10ms 16J/cm²)에서 효과가 좋았던 이유도 이것으로 설명해볼 수 있겠지만, 뒤에서 다룰 다른 요인 때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됨..)



계산의 한계

자 이제 김새는 얘기해야죠.. 지금까지는 수학적인 내용, 계산의 영역이었지만, 이 계산이 그대로 현실이 되지는 않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펄스 파형 - 실제 펄스는 직사각형이 아닐 것입니다. (정확한 펄스는 제조사가 잘 알겠지만..) 평균 출력밀도도 제가 말 그대로 평균값을 구한 거고, Altshuler et al.의 연구에서 Table 2의 TDT도 직사각형 펄스를 가정한 계산입니다.


모델 계산값 - TRT와 TDT는 실측이 아니라 모델 계산값입니다. 모낭을 원기둥으로 단순화하고 특정 직경을 가정한 값인데, 모간 단면은 원형이 아니라 타원형입니다. 같은 털도 어떻게 재느냐에 따라 직경이 좀 다르겠죠.. 두피 모발을 마이크로미터 캘리퍼와 포토트리코그램으로 비교한 국내 학술지에 실린 연구에서 평균 직경은 약 77µm vs 109µm로 1.4배 차이가 났고, 전자현미경 비교에서는 캘리퍼가 단축을 잰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TRT는 직경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직경 1.4배 차이는 TRT로 약 2배 차이입니다..!


털 굵기 외의 변수 - 털의 melanin 함량, 모낭의 깊이, 스팟 크기에 따른 유효 깊이, 냉각 방식처럼 굵기 말고도 결과를 바꾸는 변수가 계속 겹칩니다.


손상의 시간 의존성 - 조직 손상은 몇 도에 이르느냐뿐 아니라 그 온도가 얼마나 유지되느냐가 함께 결정하고, 온도 쪽의 영향이 훨씬 가파릅니다. 그래서 펄스 끝에서의 온도 분포까지 계산해보려 했는데, 열전도 계산이 너무 복잡해지고 글이 산으로 가는 것 같아 이번에는 배제했습니다..



왜 원장님들마다 경험이 다를까? ★★

어쩌면 이게 제일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제일 김샐 수도..) 이런 분석과 별개로, 같은 조작을 해도 원장님들마다 경험이 다를 겁니다. 항상 근무하면서 동료 원장님들께 여쭤봐도 이야기가 제각각일 때도 있고, 저부터도 “결국 피시술자의 주관적 체감이 판정 근거라는 게 좀 아쉽긴 하네..” 싶긴 합니다.. 애초에 현장의 제모 결과에는 배제할 수가 없는 교란 요소가 많습니다. 간단히 적으려다 생각나는 걸 다 적어봤습니다..


시간 구조에서 오는 것


누적 효과 - 회차가 쌓이면 잔존 모량이 줄어드는 게 기본값. 파라미터를 바꾸지 않았어도 나중 회차가 더 나아 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평균 회귀 - 우리가 파라미터를 바꾸는 상황은 대부분 직전 회차 반응이 미미했던 피시술자. “반응이 아쉬우면 바꾼다”는 결정 규칙 자체에 이 편향이 들어 있는 셈.. 전에 운이 나빴던 거라면, 아무것도 안 바꿔도 이번엔 나아 보일 확률이 높다는..


지연 효과 - 제모 반응은 탈락기와 성장기 재진입에 걸쳐 드러납니다. 보통 의원급에서 안내하는 4주 간격으로 내원한 피시술자가 ‘반응이 미미하다’고 느낀 게 실제로는 직전 회차의 효과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일 수도.. 반대로 다음 회차의 개선이 직전 회차의 지연된 성과일 수도 있고..


대상이 바뀌는 것


남은 털은 다른 털 - 직전 회차에 남은 털은 왜 남았을지 생각해보면.. 굵어서 덜 데워졌거나, 깊어서 열이 덜 닿았거나, 그때 anagen이 아니어서 애초에 타겟이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다음 회차는 같은 털에 다른 파라미터를 쓰는 게 아니라 다른 털에 다른 파라미터를 쓰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죠.. 통제변인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겁니다.


사람과 측정에서 오는 것


주관적 편향 - RCT를 한 게 아니니까.. 피시술자의 기대와 평가자(우리 원장들)의 bias를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무의식적인 루틴 변화 - 펄스폭을 늘렸을 때 효과가 좋았다면, 정말 그 파라미터가 유리했다고 바로 결론 내릴 수는 없는 게.. 표피 부담이 덜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여유로워져서, 패스할 때 중첩을 더 하거나 stacking을 한두 번 더 했을 수도 있습니다..


기관별/원장별 차이 - 후관리 안내도 병원마다/원장마다 다 다를 겁니다. 약간 영업비밀이긴 하지만.. 저는 후관리를 더 철저히 챙기는 편인데, 그래서 부작용 방지보다 효과 개선 쪽으로 조금 더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측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피시술자 성향 차이 - 저희 의원 제모 피시술자의 대부분인 남성분들에게서 특히 느끼는 건데, 효과 외의 부분에서도 만족도가 크게 움직입니다. 확실히 감모가 이뤄진 것 같은데도 남은 털 한두 개 때문에 아쉬웠다고 기입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솔직히 효과가 별로인 것 같은데도 병원 직원분들의 친절함에 감동받아 효과가 좋다고 기입해주시는 분들도 간혹 있습니다..



결론

글이 길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굵은 털에서는 도달 온도를 주로 플루언스가 정하고, 표피의 여유와 열이 퍼질 시간은 주로 펄스폭이 정한다.


“가는 털은 짧게, 굵은 털은 길게”는 확장 이론의 계산과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다만 이를 굵기별로 검증한 임상 연구는 부족하다.


그리고 현장의 결과에는 이 방향을 가리는 변수가 많아서, 같은 조작에 대한 경험이 원장님들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글을 마무리하며 “이 상황엔 이 값”이라는 레시피를 드리지는 못한다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파라미터를 바꿀 때 그 다이얼이 무엇을 움직이는지 알고 돌리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감을 더 잡아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팁이 있는데요,


반응이 아쉽다는 피시술자에게는, 무엇이 아쉬운지 한 번 더 물어보자!


대부분은 남은 털의 밀도를 떠올리지만, “이제 덜 나긴 하는데 아직도 나는 털은 굵다”는 게 아쉬운 분도 있습니다. 밀도 문제인지 굵기 문제인지에 따라 다음 회차에 손댈 다이얼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 나름 중요한 질문이겠죠.. 그 이후에는 펄스폭과 플루언스를 조정하는 걸 아끼지는 마시고, 그 조정이 무엇을 움직이는지 알고 재량껏 판단하시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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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김승환 본인이 직접 자료를 찾고 논문을 읽어가며 작성했습니다.